Scroll Down
최근 전진용 교수 연구팀이 도시, 수변, 녹지 환경에서의 랜드스케이프(Landscape, 자연적 요소와 인공적 요소를 제어해 조성한 풍경 등의 고유 외관)와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 자연음이나 인공음을 제어해 조성한 소리 환경) 경험을 통해 정신생리학적 회복을 촉진하는 모델을 개발해 냈다. 전지용 교수는 이번 연구가 시청각 요소와 정서적인 특성, 환경에 대한 인식을 포함하며, 환경디자인이 인간의 건강과 복지에 미치는 영향을 입증한 것이라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 다시 가고 싶은 장소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공간이나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며 ‘힐링’하고 싶어 하죠. 이번 연구는 ‘건축의 외부 환경 영역에서, 사람들이 다시 찾는 특정 공간이 시청각적으로 어떤 매력이 있는가’, ‘이러한 장소를 반복적으로 체험하면 인간의 정서적 회복이 이뤄질까’ 이 두 가지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전진용 교수 연구팀은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 기술을 통해 다양한 가상환경 모델을 제작하고, 이를 사용자가 6주 동안 경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각, 청각적 자극이 실제로 스트레스 해소와 정신 회복 촉진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평가 · 분석했다. 단순히 사용자의 주관적 의견을 청취한 것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정량화된 분석을 위해 피실험자의 뇌파(EEG)와 심박변이도(HRV)를 측정했다. 그 결과 도시보다 자연환경 속에서 참가자들이 환경변화에 더 잘 적응하고,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환경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장기간에 걸쳐, 생리적으로 분석해 과학적이고 의학적인 효과를 검증했다는 것이 이번 연구의 특징이자 강점이다.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 다양한 스트레스에 쉽게, 그리고 과중하게 노출됩니다. 우리가 여행을 계획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출발일을 기다리는 것은 외유가 주는 회복적인 영향 때문일 것입니다. 다시 가고 싶은 장소를 아이디얼하고도 리얼리스틱하게 구현할 수 있다면, 그리고 가상현실 체험을 통해 각 개인에게 맞춰진 선호 공간을 접할 수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정신의학적인 치료제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사운드스케이프는 1970년대 캐나다의 한 작곡가가 제안한 개념이다. 현대에는 콘크리트로 지어진 도시에 녹지나 공원을 조성해 친환경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어반 사운드스케이프가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건축환경학자이자 음향학자인 전진용 교수는 사운드스케이프 분야의 선구자로 손꼽힌다. 국내에 5명뿐인 미국 음향학회 펠로우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UCL의 Jian Kang 교수와 국제 학회에서 만난 인연을 20년 넘게 이어오며, 사운드스케이프를 어떻게 설계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킬지 연구해 왔다. 세계적으로 360여 차례 인용된 ‘물소리 논문’ 등 현재 이 분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논문들이 전진용 교수의 성과물이다.
“낮은 골짜기,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물줄기가 도랑 사이를 흐르며 내는 물소리를 상상해 보세요. 부드럽고 온화한 이 소리를 들을 때 사람들은 마음이 평온해지고, 힐링하게 됩니다. 이것이 소리의 힘이고, 건축 분야에서 사운드스케이프에 주목하는 이유죠. 주변 환경에 대한 관심은 인간의 감성과 연결됩니다. 삶의 여유를 시청각적 관점으로 승화하면, 사람들이 다시 찾는 가치 있는 결과물을 생성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지속가능한 경관으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이번 연구에는 청년들의 우울증에 큰 관심을 둔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이건석 교수가 함께했다. 전진용 교수는 실험설계 단계에서 이건석 교수의 조언을 받아들였고, 20~30대 학생 80~90명의 정신생리학적 반응 모델을 리서치 프레임워크에 담았다. 시각과 청각이 어우러지는 랜드스케이프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한국적인 녹지와 수변의 자연경관, 소리를 VR 기본 체험 콘텐츠로 제작했다. 그리고 우리가 매일 겪고 경험하는 도시의 일상 공간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가상현실 콘텐츠 자체뿐 아니라 이것을 다양하게 접속하게 하는 방식에 있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특성이 다릅니다. 또 같은 사람, 같은 콘텐츠라 하더라도 내 무드가 달라지면 다른 게 더 끌리거나 원래 좋아하던 것을 좋아하지 않게 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 가상현실 모델을 조성하되 여러 상황에 맞출 수 있도록, 사운드스케이프에 차이를 두는 실효적인 접근을 고려했습니다. 전통적인 국악과 다양한 현대 국악 등의 음악을 함께 매칭하는 것이죠.”
전진용 교수는 이와 함께 여러 사람이 함께 참여하는 VR 사운드워크(다중 접속 방식)도 구현했다. 이 경우 ADHD나 사회적 관계성이 필요한 경도인지장애 환자의 인지개선 치료, 진단을 위한 소중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전진용 교수가 개발한 VR 체험 모델은 공간적 개념을 뛰어넘어 클리닉과 실험실, 공공복지 시설, 재가 환경에까지 확장될 수 있어 일상에서 유용한 적용이 가능하다. 또 현실과 격리된 이동 불편 환자들이 실감 나는 현실을 체험하게 하며, PTSD같이 공포스러운 경험 후에 나타나는 정신적 후유증에도 비약물적 치료 방식이 될 수 있다.
전진용 교수의 연구가 VR을 활용한 정신생리학적 회복 모델 개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사운드스케이프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를 전개하고 있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호흡기내과 분야 의료융합 연구로 기침 소리로 폐렴을 진단하는 AI를 개발하기도 했다. 이 AI 기술은 현재 미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에 기술이전됐는데, 미국 재향군인회 가정에 배치되는 하드웨어에 장착될 예정이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연구는 현대자동차와 함께 진행 중이다. 바로 미래 모빌리티라 할 수 있는 ‘목적기반차(PBV: Purpose Built Vehicle)’다. 전진용 교수는 지난 몇 년간 미래 자동차의 내부 공간설계 사운드스케이프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자동차가 콘서트홀이나 업무 공간, 회의실, 휴게 공간으로 활용될 때를 가정해 내부 사운드스케이프를 설계하는 것이다. 현재 VR을 활용해 관련 공간 체험이 가능한 상태다. 전 세계적으로 자율주행차 안에서의 멀미 등 생리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점을 찾는 연구들이 다양화, 보편화되고 있는데 전진용 교수의 연구가 그 해법이 될 수 있다.
사운드스케이프는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각광받을 분야로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전진용 교수는 사운드스케이프가 환경 심리, 사람이 중심이 되는 환경디자인의 중요한 축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한양인에게 자신의 열정을 쏟을 분야를 찾아 몰입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제가 처음 사운드스케이프 분야를 접했을 때는 이것이 새로운 학문이었고, 기존 학자들한테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었죠. 하지만 현재에 와서는 건축은 물론 의학,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도 활용되는 중요한 연구 분야가 됐습니다. 자신만의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무언가를 찾길 바랍니다. 긴 인내와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가치 있는 일에 관심을 갖고 시간을 쓰다 보면 그 경험들이 쌓여 자연스럽게 보람과 행복으로 이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