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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로
서울의 경쟁력을 높이다

서울문화재단 대표 이창기 동문(일반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 15)

  • 글 박영임
  • 사진 이현구
2021년 서울문화재단 대표로 취임한 이창기 동문은 예술인 지원과 서울 시민의 문화 향유 기회 확대를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왔다. 그 결과 임기 중 공공기관 최초로 삼일투명경영대상, 대한민국예술문화대상 등 17개의 상을 받았다. 서울문화재단이 과거 10년간 받은 상보다 더 많은 상을 받은 것이다. 문화예술이 넘치는 서울을 위해 치열하게 달려온 이창기 동문을 만나보자.
예술경영 전문가로서 활약 중인 이창기 동문은 우리나라 문화예술계 발전에 크게 기여해 왔다.

서울은 ‘예술특별시’

“뉴욕, 런던, 파리 등 세계적인 대도시들은 단순히 경제적 성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문화예술이 발달하지 않은 도시는 메트로폴리스의 기능과 역할을 할 수 없죠. 도시 발전의 원동력인 문화예술이 함께 발전해야 합니다. 도시에서 일상을 영위하는 시민들이 정신적으로 풍요로워야 하는데, 그를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문화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문화재단 대표인 이창기 동문은 도시 발전에 미치는 문화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업하기 좋은 도시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예술하기 좋은 도시도 되어야 한다. 그래서 서울문화재단은 창립 20주년을 맞은 지난 3월 ‘예술하기 좋은 도시, 예술특별시 서울’이라는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문화예술인 지원과 시민들의 문화 향유권을 대폭 확대하기 위해 예술 지원체계 고도화, 순수예술 시상제도의 공신력 강화, 미래형 예술 지원모델 발굴, ‘아트페스티벌_서울’ 사계절 개편, 전 연령 대상 생애주기 예술 교육체계 마련 등 10대 과제를 추진하고 있다.

“서울문화재단의 역할은 예술인의 창작 활동을 지원해 좋은 작품이 많이 창작되도록 돕고, 서울 시민이 그것을 잘 향유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근데 이 두 가지 영역은 서로 톱니바퀴처럼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습니다.”

2021년 이창기 동문이 취임한 이후부터 새로 추진한 신규 사업만 해도 어림잡아 20개가 넘는다.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왔다. 특별히 애착이 가는 사업이 있는지 묻자, 그 또한 다섯 손가락을 넘어간다. 그만큼 애정을 쏟지 않은 사업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예를 들면 사각지대 없이 예술인들의 창작을 지원하기 위해 기존의 신진, 유망, 중견의 3트랙으로 진행됐던 예술 지원체계에 청년과 원로 트랙을 추가해 보다 촘촘한 그물망 지원체계를 구축했다.

지원 시기를 앞당긴 점도 획기적이다. 그동안에는 연초에 지원사업을 공모한 후 심의를 거쳐 3, 4월쯤 결과를 발표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다 보니 결과가 발표될 때까지 예술인들의 한 해 창작활동 계획도 유보됐다. 통과하지 못하면 상반기를 허송세월하게 되는 것이고, 다행히 붙어도 연말까지 서둘러 작품을 완성해야 하니 허겁지겁 작업하기 일쑤였다. 이러한 불합리한 관행을 개선하고자 서울시의회를 설득, 예술 지원사업 예산을 미리 확정받아 9월에 공고를 내고 12월까지 심사를 마친 후 1월에 결과를 발표하는 방식으로 일정을 당겼다. 대한민국 예술계의 시간표를 바꾼 셈이다.

위기나 도전 없이 산 사람의 역량은 늘 비슷한 수준이지만, 위기를 극복한 사람의 역량은 계속 발전한다고 믿습니다

발로 뛰는 예술경영 전문가

이창기 동문은 서울 시민들의 문화 향유권 확대에도 힘을 쏟았다. 권역별로 연극센터, 무용센터 등 5개의 문화예술교육센터와 14개의 예술창작공간을 운영하며, ‘서울스테이지’, ‘찾아가는 스테이지’ 등 시민을 위한 무료 예술 콘서트를 개최했다. 또 주로 가을에 집중됐던 페스티벌을 사계절로 확장해 봄에는 서커스, 여름에는 비보이댄스나 K-팝, 가을에는 한강노들섬 발레나 오페라, 겨울에는 융합예술 등이 펼쳐지도록 했다. 사계절 내내 풍성하게 공연을 즐길 수 있게 한 것이다.

사업의 면면에서 남다른 기획력과 추진력을 엿볼 수 있다. 이창기 동문은 그동안 세종문화회관 경영본부 본부장, 강동아트센터 관장, 마포문화재단 대표를 역임했을 뿐 아니라, 현재 광역문화재단 연합회의 회장직까지 맡고 있는 명실공히 예술경영 전문가다. 하지만 처음부터 문화예술계에 몸담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예술과는 무관하다고 할 수 있는 서울시 행정 공무원으로 11년이나 일했다. 그러던 중 1999년 세종문화회관이 민영화되며 대대적으로 직원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났다. 이를 본 이창기 동문은 가슴 깊은 곳에서 때를 기다렸던, 예술에 대한 남모를 선망이 ‘바로 지금’이라고 외치는 것을 느꼈다.

“어릴 때부터 막연히 예술을 동경했습니다. 어머니가 신무용을 해 공연 사진을 자주 접했고, 예술에 관심이 많은 어머니 덕분에 피아노와 무용도 배웠죠. 공직에 있는 동안에도 틈틈이 공연, 연극, 독서를 즐겼습니다. 그러다 세종문화회관의 직원 모집 공고를 보고 ‘내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것이다’는 생각으로 지원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공직 생활을 청산하고 세종문화회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주변에서는 안정적인 공무원을 그만두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예술을 선망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결심을 꺾지 않았다. 이창기 동문은 세종문화회관에 4급으로 입사해 1급(본부장)까지 진급한 첫 사례가 됐다.

이창기 동문이 대표로 취임한 2021년 이후, 서울문화재단은 20개가 넘는 신규 사업을 추진하며 17개에 달하는 상을 휩쓸었다.

위기는 성장의 어머니

이창기 동문은 뒤늦게 문화예술계에 입문했으나 누구보다 치열하게 문화예술 현장을 누볐다. 그러는 와중에 학업에 대한 의지도 놓지 않았다. 뒤늦게 석사 과정으로 예술경영을 공부한 데 이어, 2021년에는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딸들에게 계속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박사 과정에 도전했습니다. 타 대학보다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 어렵다는 말에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를 선택했죠.”

호기롭게 어려운 길을 택했으나 한 주에 한 편씩 소논문을 발표해야 하는 수업 준비와 학위 논문 작업 과정은 만학도에게 절대 녹록지 않았다.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수업 시간을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로 몰았는데 젊은 학생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더욱 열심히 공부했다. 논문 작업 기간에는 침대 옆이든, 거실 소파 옆이든 집안 곳곳에 책상을 배치해 24시간 어디서든 논문을 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열정과 열심이 오늘의 그를 일군 힘이다.

“서울문화재단 대표로서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달려왔고, 기억에 남는 순간도 많습니다. 제 삶을 돌이켜보면 운명처럼 힘든 길을 걸어왔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거쳤던 기관마다 어려운 시기에 취임했죠. 위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히 맞서야 합니다. 위기를 이겨내면 그만큼 경험치를 쌓고 노하우를 얻어, 자신도 모르게 더 높은 곳에 있게 될 것입니다. 제가 젊은 직원들에게 해주는 말인데 한양대 학생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말입니다.”

이창기 동문은 “위기나 도전 없이 산 사람의 역량은 늘 비슷한 수준이지만, 위기를 극복한 사람의 역량은 계속 발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이창기 동문은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바로 대한민국 지역 문화 정책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지방 문화예술의 소멸이 우려될 정도로 문화적 불균형이 심한 상황에서 각 지역 문화예술의 첨병 역할을 하는 141개 기초 단위 문화재단과 광역 단위 문화재단을 통합하는 한국지역문화재단 총연합회를 창단하는 산파 역할을 했다. 그리고 현재 총연합회의 회장직을 맡아 전국 문화예술 유통 체계를 단일화했다. 또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후진을 양성하는 것이다. 이창기 동문의 도전과 위기 극복의 역사는 여전히 하루하루 새로 쓰이고 있다.

이창기 동문은 예술인 지원과 서울 시민의 문화 향유 기회 확대를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며 서울문화재단의 위상을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