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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치가 새로 쓰는
21세기 국악, 우리 이야기

그룹 이날치 보컬리스트 권송희 동문(국악과 05)

  • 글 이연주
  • 사진 손초원
조선 후기 8명창 중 하나였던 이날치 명창으로부터 유래한 이름으로 등장해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한 그룹. 21세기 판소리로 세대 불문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이날치는 두 명의 베이시스트, 한 명의 드러머, 4명의 소리꾼으로 구성된 얼터너티브 팝 밴드다. 이날치의 소리꾼 권송희 동문은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흥겨움과 파격적인 국악으로 신선한 에너지를 전달하고 있다.

K-콘텐츠의 아이콘

한국관광공사의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Feel the Rhythm of Korea)’ 영상 중 가장 먼저 주목받은 서울 편은 2022년 9월 초 기준 4800만 뷰, 좋아요 23만 개, 댓글 1만2000여 개를 기록 중이다. 성공적인 영상 콘텐츠로 대중에게 자신들을 각인시킨 이날치는 21세기형 국악의 아이콘으로 크게 주목받았다. 2020년 7월 영상 공개 이후 2년이 흐른 지금. 이날치는 새로운 활동을 앞두고 한창 분주한 시기를 맞았다. 권송희 동문은 매일 반복되는 긴 연습 스케줄을 소화하며 앞으로의 활동을 위해 열정으로 쏟고 있다.

“9월 런던, 네덜란드, 벨기에, 헝가리를 시작으로 공연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우선, 외국인들이 우리 음악을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굉장히 궁금해요. 해외 투어 자체가 매우 큰 모험이자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이날치 음악에 대한 관객 경험을 확인할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이날치의 해외 활동은 올해 9월 유럽투어가 처음이다. 하지만 외국인들의 반응이 워낙 뜨겁다 보니 해외 공연쯤은 이미 여러 번 다녀온 듯한 느낌이다. OTT 플랫폼, 유튜브를 통해 K-콘텐츠의 재발견이 이어지고 있는 요즘, 이날치의 음악은 우리 전통음악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며 큰 관심을 받았다. 그래서일까, 1집 수궁가에 감명했던 대중들은 이날치의 2집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2집에서 심청가나 흥보가를 하지 않을까 많은 분의 예상과 기대가 있었는데요. 이번 2집은 우리의 현대적 언어로 기존 판소리 사설이 아닌 다른 내용으로 만들어보는 것으로 방향을 정했습니다. 곡마다 콘셉트가 있고 전체적인 구성으로 볼 때 하나로 엮이는 내용으로 앨범을 만들어보고 있는데요. 가장 큰 골자는 사랑에 대한 내용이 될 것 같습니다.”

판소리는 수많은 서사가 있다. 그렇기에 이 수많은 판소리 사설 중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올지, 또 어떻게 편곡할지에 관한 주변의 기대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새로운 서사와 곡을 만들기로 한 배경에는 대중들에게 서사적 공감대를 형성하길 원하는 이날치의 바람이 있었다. 좀 더 쉽게, 잘 알아들을 수 있으면서도 소리에 담긴 이야기를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는 2집. 작창을 기존의 것에서 샘플링하되, 가사를 새로이 지으면서 그것에 맞게 변화를 주며 곡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한지라 기존 판소리를 편곡하는 것보다 몇 배의 수고가 필요하다. 이러한 수고를 거쳐 완성된 신작 ‘물밑’은 10월 28일부터 30일까지 LG아트센터를 통해 첫선을 보일 예정이다. 아이콘을 넘어 마침내 하나의 장르로서 대중들에게 새로이 기억될 것으로 기대된다.

세종문화회관 ‘싱크 넥스트 22(Sync Next 22)’ 무대에 오른 이날치의 모습. 권송희 동문은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며 하나 되는 무대를 이끌었다.
사진 제공 : HIKE

혁신으로 통념의 한계를 넘는 뮤지션

“최근 세종문화회관 블랙박스에서 오랜만에 스탠딩 공연을 했어요. 관객분들이 모두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였는데, 판소리 가사를 다 외워 저희랑 같이 부르는 모습에 깜짝 놀랐죠. 지금도 그 모습이 잊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콘서트나 페스티벌에서 볼 수 있는 광경. 어려운 사설과 판소리를 마스크가 들썩일 정도로 따라 부르는 ‘판소리 떼창’은 소리꾼에게 매우 흔치 않은 경험일 터다. 고수와 소리꾼의 소리만 울려 퍼지는 무대가 아니라 관객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하나의 판이 만들어지는 경험. 21세기 흥의 민족에게 어울리는, 그야말로 국악 한마당을 경험한 것이다. 이날치의 음악을 통해 국악인들의 유연함도 서서히 빛을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악에 대한 대중의 고정관념을 벗어나는 데엔 더 큰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고 권송희 동문은 덧붙였다.

“요즘에는 국악 인지도가 많이 올라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는데요. 한편으론 국악을 바라보는 관념이 뿌리 깊게 고착돼 있음을 마주할 때도 있습니다. 오랜 시간 자리잡혀온 만큼 고정관념의 힘이 참 크다는 걸 느끼곤 했죠.”

고착된 관념이 큰 만큼 이를 벗어나기 위한 시도 역시 매우 활발하다. 수많은 음악 장르 중 가장 많은 실험과 창조가 이뤄지고 있는 것 역시 국악 무대다. 이날치와 같이 판소리와 신스팝을 결합한 밴드 형태의 아티스트가 있어 우리 전통음악의 흥겨움이 더해가고 있다. 이 때문에 성공적으로 1집 활동을 마친 뒤에도 이날치는 대중에게 어떠한 존재감으로 기억돼야 할지 끊임없이 자문하며 고민해왔다.

“저희 멤버들 모두가 저희 그룹을 매우 냉정하게 바라보는 편이에요. 이날치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와 함께 ‘범 내려온다’로 화제성을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음악적인 인정에 대한 목 마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 앞에서 더욱더 음악성을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 강한 것 같아요.”

유행의 흐름이 급류와 같이 거세고, 그 규모 또한 거대한 국내 대중음악 시장. 그 속에서 국악은 상업적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주류와 거리가 멀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슈와 큰 화제를 끌어낸 팀으로서 전통음악을 통해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숙제가 아직 이날치에 남아 있는 셈이다. 권송희 동문은 고유의 장르로서 이날치를 각인시키기 위해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치가 다양한 장르의 무대와 협업에 서슴없이 참여해온 것 역시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날치의 소리에 큰 관심을 보이고 뜨겁게 열광해주셨다는 것 자체가 큰 성과이고 큰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을 주신 것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팝 시장에서 이날치가 좋은 선례가 되고 싶다는 더 큰 욕심과 목표가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권송희 동문에게 한양의 선후배에게 들려주고 싶은 곡이 있는지 물었다. 권송희 동문은 최근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의 OST였던 ‘Let's live for today’라는 곡을 소개했다. 이날치 멤버들이 직접 가사를 번역한 뒤 판소리의 곡조로 새로이 구성해 기존과는 또 다른 참신함을 주는 곡이다. ‘아름다운 것으로 인생을 채워요, 난 오늘도 그댈 사랑하기 바쁘죠’라는 가사에는 인생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유일한 가치로 채우는 기쁨을 누리라는 바람과 염원이 깃들어 있다. 권송희 동문이 국악의 멋과 흥 그리고 관객, 대중과 호흡하는 기쁨으로 무대를 채우듯, 이날치의 음악이 듣는 이의 마음을 감격과 흥겨움으로 가득 채울 수 있길 바라본다.

권송희 동문은 올해 9월 첫 유럽투어를 시작으로 더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이날치 음악만의 매력을 선보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