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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란
당대의 가장 융합적인 성과

ERICA캠퍼스 산업디자인학과 한정완 교수

  • 글 박영임
  • 사진 이현구
한정완 교수가 2022년 12월 ‘디자인 코리아 2022’에서 국가 디자인 전략 수립, 디자인 정책 시행과 더불어 관련 전문인력 양성에 기여한 공로로 대한민국디자인대상 근정포장을 수상했다. 지난 2월 퇴임식을 앞두고 진행된 한정완 교수와의 인터뷰는 국내 디자인 산업의 발전을 위해 지나온 길을 되짚어 보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국가 디자인 경쟁력 향상에 기여한 30년

지난 30년간 산업디자인 전문가로서 지자체 및 정부가 주도하는 다양한 공공디자인 사업에 참여해온 한정완 교수. ‘디자인 코리아 2022’에서 대한민국디자인대상 근정포장을 수상한 데에는 특히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진행했던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주관의 ‘HEMU400X’ 프로젝트가 주효했다. 본 프로젝트는 설계 최고속도인 400㎞/h를 목표로 하는 ‘동력 분산형 고속전철 원형 모델’을 개발하는 프로젝트였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주관한 HEMU400X 프로젝트 당시 여러 교수진 및 석·박사 연구원들과 협업해 차세대 고속전철 디자인 개발이라는 국책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뤄냈습니다. 공기역학적 디자인과 다양한 첨단 편의시설을 디자인했죠. 이를 통해 국가 경쟁력을 한 차원 높이고 우리의 디자인 자산을 확보하는 계기가 돼 그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서는 많은 디자인 R&D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리는 실무자들이 많죠. 그래서 이번 수상은 디자인 역사를 만들어 온 많은 이를 대신해 받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외에도 한정완 교수는 ‘송도 68공구 도시디자인 개발 계획’, ‘안양시 공공예술 프로젝트’, ‘안산시 호수공원 공공 시설물 디자인 개발’ 등 다수의 지자체 사업에 참여했고, ‘경기테크노파크 디자인 개발 사업’ 같은 국가 기간사업을 진행한 바 있다. 60건 이상의 디자인 자문 및 심사에 참여했다. 대표적인 활동으로 ‘2012 여수세계박람회 자문위원회’, ‘2018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서울특별시 도시철도공사 시설자문단’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렇게 한정완 교수는 다양한 공공사업에 참여하면서 지역사회의 수요를 디자인으로 수렴했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부터 경제 성장과 함께 부가가치 수단으로 디자인에 주목했습니다. 이에 디자인 산업에 대한 관심과 투자도 높아졌죠. 그 결과 이제 우리나라의 디자인 산업 및 정책은 충분한 국제 경제력을 갖췄다고 생각합니다.”

한정완 교수는 국가 디자인 전략 수립과 디자인 정책 시행, 전문인력 양성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해 대한민국디자인대상 근정포장을 수상했다.
디자인의 융합적인 특성을 학생들에게 강조해온 한정완 교수.

디자인 시스템 분야 1세대 연구자

사실 한정완 교수가 대학을 졸업하고 전자 회사에서 일하던 1980년대 초반만 해도 국내 전자제품은 세계 시장에 명함도 내밀기 어려웠다. 기능에만 치중하다 보니 디자인은 뒷전이었고, 당연히 소비자의 눈길을 끌기엔 부족했다. 특히 주방가전은 천편일률적으로 흰색을 띠어 ‘백색가전’이라 불렸다. 하지만 컬러TV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디자인에 눈을 뜨게 된 소비자들은 다양한 취향을 갖게 됐다. 소비자 눈높이를 만족시키지 않으면 국내 소비자들에게도 외면받게 된 것이다.

이즈음 한정완 교수는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타개책을 강구하라!’는 회사의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그리고 그곳에서 디자인 시스템이라는 신학문을 접하게 됐다. 이것이 한정완 교수가 미술을 전공했으나 공학박사라는 독특한 이력을 갖게 된 배경이다.

“본격적으로 디자인 시스템을 공부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예술이나 인문학 내 디자인 커리큘럼으로는 솔루션을 찾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 공학 안에 있는 디자인 관련 융합학과에 진학했죠. 디자인 시스템은 디자이너가 수행하는 단계별로 디자인 과정의 효과 및 효율을 최적화하기 위한 알고리즘을 이해하고 설계하는 연구 분야입니다.”

일본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1995년 한양대에 부임한 한정완 교수. 그는 국내에서는 생소하기만 한 디자인 시스템이라는 학문을 정착시킨 1세대 연구자라 할 수 있다. 그동안 100여 건의 연구성과를 발표하며 교과과정에 적용할 수 있는 교육적 기틀을 마련했는데 인간공학과 콘텐츠, 공공디자인, VR, 메타버스 등 산업 전반에 걸친 과학적인 디자인 방법론을 제시했다.

“4차 산업과 신산업이 대두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디자인 경영과 시스템적 관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즉, 디자인을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하고 기업과 조직의 경쟁력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기술의 진보는 디자인의 진보를
가져올 수밖에 없으며,
디자인은 현시대에 가장 복합적이고
융합적인 학문이다

한정완 교수

열정의 원동력은 제자 사랑의 마음

좋은 디자인이란 어떤 디자인일까. 한정완 교수는 가치를 제시하는 디자인이라고 한마디로 답했다. 그리고 디자이너는 디자인 정체성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디자인 가치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사회적, 문화적 경쟁력을 확보한 형태와 기능, 소재, 색상 등을 의미합니다. 눈에 보이는 외관에 가치를 불어 넣는 일은 매우 고달픈 과정입니다. 하지만 사용자에게 더 나은 경험적 가치를 제공해야 해요. 4차 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디자인이나 지속가능한 디자인, 메타버스 기반의 디자인 등 혁신적인 결과물과 더불어 그것들이 드러내는 통합적 정체성을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디자인 가치를 향상하는 일입니다.”

더불어 한정완 교수는 디자인과 기술의 협업을 주장했다. 기술은 디자인 요소들을 구현하는 기반이 될 뿐 아니라 디자인과 기술의 융합으로 혁신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의 진보는 디자인의 진보를 가져올 수밖에 없으며, 디자인은 현시대에 가장 복합적이고 융합적인 학문이라고 강조했다.

“디자인이라는 것은 결국 기계와 그 안에 담긴 문화나 스토리 같은 콘텐츠를 연결하는 작업입니다. 그래서 디자이너는 인문학, 공학, 통계학 등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그들의 입장에서 공감하고, 다양한 학문적 언어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하죠.”

한정완 교수는 지난해 12월 13일, 정년퇴임을 앞두고 자신의 마지막 강의를 마쳤다. 전 학년 학생들이 한정완 교수의 마지막 강의를 기념하기 위해 강의실을 찾았다. 학생들의 반짝이는 눈망울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문득 깨달음이 스쳤다.

“그동안 제가 학생들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저를 가르쳤더군요.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받아 지금까지 지치지 않고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이니까요. 무엇보다 전공과 제자들을 사랑했기에 그간의 성과가 있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제자들과 젊은 후학들이 열정과 인내심을 가지고 대한민국의 디자인 동력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침 인터뷰가 있던 2월의 마지막 날은 한정완 교수의 퇴임식 날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담담한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는 한정완 교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많은 성과 중에서도 여성 디자인 인력들의 사회 진출을 위해 백방으로 뛰었던 일이 가장 보람됐다고 전했다. 우리나라 디자인 산업 진흥을 위해, 그 디자인 산업을 이끌어갈 후학 양성을 위해 달려온 지난날들. 그의 헌신과 노고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