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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이나 자율주행 전기차, 휴머노이드 로봇은 머지않아 우리의 일상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들 산업의 이면에는 동력인 전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선결 과제가 있다. 그렇지 않아도 탄소배출 감축을 위해 에너지 절감이라는 절체절명의 미션을 안고 있는 인류에게 부담이 가중되는 셈이다. 그런데 우리가 꼭 생각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인류가 사용하는 원자력, 화력 등을 포함한 대부분의 에너지 기술은 그 효율이 33%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머지 67% 정도의 에너지는 안타깝게도 사용할 수 없는 폐열로 버려지고 만다.
“이렇게 방대한 양의 폐열을 조금이라도 회수해 전기로 활용할 수 있다면 좋겠죠. 그래서 에너지 효율성 문제가 전 세계의 중요한 이슈로 부상했고, 폐열을 활용하는 기술 연구가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중저온 영역에서 온도 차이를 가지는 열원인 저등급 폐열은 활용되지 못하고 버려지는 에너지원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문제에 착안해서 김상태 교수는 5년 전부터 열전갈바닉(Thermogalvanic, 열전전기화학장치) 소자로 폐열을 회수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김상태 교수는 열전갈바닉이 쉽게 말해 전압 대신 열로 충전되는 배터리와 비슷한 장치라고 설명했다. 배터리처럼 양극, 음극, 전해질로 구성된 장치의 양쪽 전극에 다른 온도를 전달하면, 한쪽 전극에서 다른 쪽 전극으로 리튬을 이동시켜 사용하는 리튬 이온 배터리처럼 이온이 온도 차에 의해서 한쪽 전극에서 다른 쪽 전극으로 이동해 전기를 발생시킨다. 하지만 열동력(단위 온도당 발생하는 전력)이 낮아 상용화하기에는 요원한 기술이었다. 여느 날처럼 열전갈바닉의 열동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하던 중 김상태 교수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열동력을 어떻게 하면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갑자기 고체가 액체로 변할 때 내부의 에너지(혹은 엔트로피)가 많이 변하게 되니 이때 발생되는 전압도 커질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를 연구에 적용해 보기로 했죠.”
상전이 현상을 응용해 보기로 한 김상태 교수는 연구 끝에 작은 온도 차(10℃ 차이) 조건에서 차가운 쪽은 고체 금속, 뜨거운 쪽은 액체가 되는 녹는점이 매우 낮은 금속을 사용해 열전갈바닉 소자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는 최종적으로 열동력을 기존 1℃당 2㎷에서 26㎷까지 향상시켰다. 유사한 장치 4개를 직렬로 연결하면 동일한 온도 차인 10℃ 온도 차에서 1V 정도의 전압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추론을 할 수 있다.
“상전이 과정을 활용해 저등급 폐열을 고효율 전력으로 변환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시했습니다. 최근 액체금속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다른 금속이나 물질에도 상전이 현상을 응용했을 때 열동력을 높일 수 있다는 일반적인 추론을 제공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열동력을 보유한 열전갈바닉 소자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저등급 폐열은 다양한 산업 설비와 응용 기기에서 발생하지만 대개 활용이 안 돼 버려지는 에너지원이다. 공장, 발전소, 자동차 등에서 발생하는 이 저등급 폐열을 효과적으로 회수할 수 있다면 에너지 절감과 탄소배출 감소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전기자동차, 전자기기, 반도체 등에서 발생하는 열을 전기에너지로 변환하는 기술이 성공적으로 개발된다면 그 파급효과는 매우 클 것이다.
하지만 연구 과정이 녹록지 않아 5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상전이 현상을 활용하는 연구는 처음이기에 금속이 액체가 되었을 때의 불안정성을 통제하는 데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게다가 상온 부근에서 녹는 금속으로 실험하다 보니 수분과 산소를 철저히 차단해야 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정말 많은 실패를 했습니다. 동일한 실험을, 미세하게 조건을 변경하며, 몇 년간 반복적으로 실행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실험을 계속했기에 설계 원리를 증명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연구뿐만 아니라 우리가 마주하는 여러 문제도 당장은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을 것입니다. 한양인들이 이런 문제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했으면 합니다. 성공해서 문제를 풀어내도 좋고, 실패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분명 새로운 무언가를 얻고 배울 수 있을 테니까요.”
김상태 교수는 이러한 생각으로 연구를 지속했다. 그 결과 에너지 및 환경 분야의 세계 최고 학술지인 <에너지 & 환경 과학(Energy & Environmental Science, IF=32.4, 상위 0.3%)>에 해당 논문을 발표(2024년 8월 15일 자 온라인 게재)하는 결실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열전갈바닉 소자에 대한 연구는 당장 상용화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본 연구만 해도 수분 및 산소와 닿으면 안 되는 소듐-포타슘 합금을 사용해 상용화하려면 이를 단단히 밀봉해야 하는 선결 과제가 있고, 물과 만났을 때 이차전지처럼 폭발의 우려도 있다. 그러나 당장 상용화되지 않더라도 고체가 액체가 되는 상전이 현상을 응용할 때 열동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작동 원리를 검증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렇게 열전갈바닉 소자에 대한 연구는 기초연구에 해당하기 때문에 투자 여력을 지닌 미국이나 중국에서 관련 연구를 선도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폐열을 회수할 수 있는 기술이 연구되고 있다. 김상태 교수는 본 연구에서 발견된 액체금속과 전해질 사이의 반응성 문제를 개선하는 연구와 열전갈바닉 소자를 폐열 회수 외 반도체와 같은 용도로 활용할 방안을 연구할 계획이다. 더불어 원자력에 응용 가능한 신소재도 연구하고 있다. 차세대 원자로로 주목받고 있는 용융염 원자로의 부식 문제를 해결할 소재나 사용후핵연료의 안전성을 높일 수 있는 소재 연구를 진행 중이다.
“앞으로 인류가 꼭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인식해 기후변화와 탄소중립에 관심이 많습니다. 원자력 기술이 이에 반드시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차세대 원자로와 폐열 회수장치 개발 등 인류의 기후변화 문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를 이어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