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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학도’라는 말이 있다. 나이가 들어 뒤늦게 공부하는 학생을 이르는 말이다. 흔히 공부에는 때가 있다고 하지만, 평생학습 시대를 맞은 요즘 공부에 나이 제한이 어디 있겠는가. 그것을 몸소 보여주려는 듯 황재철 동문은 예순이 넘은 나이에 대학 공부를 시작했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포기해야 했던 학업이지만 더 늦기 전에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이 섰기 때문이다. 경영학으로 전공을 정하고 학사학위를 취득했으며, 2020년에는 한양대 융합산업대학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그의 실력과 열정을 알아본 것은 함께하는 교수진이었다.
“석사과정 중에 교수님 부탁으로 한국인적자원관리학회에서 회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청중이 전국의 경영학과 교수님들이어서 굉장히 놀랐었죠.”
경기도 시흥시 시화공단 내에서 자동차 부품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황재철 동문. 그는 자신의 경험과 전문성, 혜안을 살려 ‘자동차 부품 산업의 경쟁력 확보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 논문으로 최우수논문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학구열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곧바로 일반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회사를 운영하는 황재철 동문이 경영학으로 학사와 석사과정을 마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런데 문학박사라니, 돌연 국문학으로 방향을 튼 이유가 무엇일까.
“‘중국 문화 읽기’라는 교재를 공부하다가 춘추전국시대 손숙표(叔孫豹)란 사람이 제시한 ‘삼불후(三不朽, 영원히 죽지 않는 것)’를 접하게 됐습니다. ‘죽어서도 영원히 남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손숙표는 공(功), 덕(德), 말(言)이라고 답했죠. 해석하자면 업적을 남기고, 인격을 남기고, 글(저서)을 남기라는 뜻이에요. 그것을 읽고 한참 동안 멍해지더군요. 그리고 무모하게도 나도 한번 글을 남겨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래서 국문과에 진학했습니다.”
아무리 회사 일이 바빠도 까마득한 후배뻘인 젊은 학생들과 똑같이 수업을 준비했다. 정말 열심히 강의를 들었다고 말하는 황재철 동문. 평소 한시(漢詩)를 비롯해 시를 좋아했으나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국문학과에 진학한 것을 후회한 순간도 많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학업에 매진해 ‘윤동주 시의 장소성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지난 10년간 여느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열정 넘치는 캠퍼스 생활을 마친 황재철 동문은 이제 다시 경영인의 길로 돌아갔다. 황재철 동문이 이끄는 (주)동원특수는 자동차 안의 창문, 라디오, 에어컨 등 다양한 기능 버튼들 안에 내장된 키패드나 연료탱크 및 연료펌프 속 부품 소재인 특수고무를 생산하는 곳이다. 1977년 한일자동펌프에 고무패킹을 납품하며 사업을 시작했으니 벌써 50년이 다 돼간다. 현재는 현대·기아차의 2차 벤더로서 국내 시장의 8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현대차가 엑셀과 엘란트라를 처음 미국에 수출할 때였습니다. 저희 회사를 비롯해 몇몇 회사에 문 열림 경고등에 들어가는 고무의 견적을 의뢰했습니다. 저희 회사 제품 가격이 제일 비쌌죠. 하지만 영하의 온도에 방치한 후에도 고무가 얼지 않고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지 테스트한 결과 저희 회사 제품만 통과했습니다.”
그렇게 연을 맺은 현대자동차와는 그 후로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현대차와 함께 세계 시장을 누비고 있는 것이다. 고객사가 요구하는 기준을 충족시키려면 가격보다는 기술력으로 승부해야 한다. 자동차가 제 수명을 다할 때까지 온전히 기능을 수행하도록 내구성이 좋은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는 황재철 동문. 그는 가장 중요한 경영 원칙으로 ‘정직’을 꼽았다.
“제품을 만들 때 고객은 물론, 저 자신에게도 정직해야 합니다. 고객사가 원하는 제품의 스펙에 맞는 제품을 정직하게 만들어야 불량이 발생하지 않죠. 그래서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도 저희 같은 작은 회사를 인정해 주는 겁니다.”
황재철 동문만의 정직에 대한 집념은 이번 박사 논문을 완성할 때도 여실히 작용했다. 사실 윤동주 시인에 대한 논문이 첫 논문이 아니다. 처음 논문 주제는 윤동주와 이육사의 시를 비교‧분석하는 것이었는데, 버젓이 논문을 제출한 뒤에 뒤늦게 후회가 밀려와 황급히 주제를 바꾸었다고 한다.
“학장님께 논문을 제출했는데 웬일인지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비교연구는 누구를 좀 높이고 누구를 좀 낮춰야 하잖아요. 제가 큰 실수를 하게 될 것 같더군요. 그래서 윤동주 시인의 시만 분석하는 것으로 논문 주제를 변경했습니다.”
두 시인 중 윤동주 시인을 택한 이유는 오로지 인정이 쏠려서였다. 가족도 꾸리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홀로 생을 마감한 윤동주 시인에게 마음이 더 갔던 것이다. 윤동주 시인의 시를 ‘장소성’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한 것이 인상적인데, 이는 한 지리학자의 저서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그리하여 일본 후쿠오카, 중국 북경, 서대문 형무소의 세 장소에서 잉태된 윤동주 시인의 시를 비교‧분석했다.
원하는 대로 문학박사를 취득한 황재철 동문은 앞으로 어떤 글을 남기게 될까. 사실 글쓰기의 포문은 이미 열렸다. 박사과정 졸업시험을 마치고 논문 작성만을 남겨둔 2022년 가을, 그는 자서전 시집 <가을의 다짐>을 발간했다. 세상에 남기는 첫 글로 선택한 것은 인생에 대한 이야기였다. 한창 공부할 나이에 생업에 뛰어들어야 했던 황재철 동문은 가난과 역경을 딛고 걸어온 자신의 길에 대해 글을 쓰고 싶었다고 밝혔다.
“저는 가난으로 제때 공부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린 학생들이 저와 같은 아픔을 겪지 않고 마음 편하게 공부할 수 있게 돕고 싶었죠. 서울 양평동에서 2대의 기계로 조그맣게 공장을 시작했을 때부터 고아원, 어린이재단에 기부를 해왔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기부금의 액수는 점점 커져 한양대를 비롯해 몇몇 대학에 발전기금을 기부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학기를 이수하고 있던 2018년부터 박사학위 취득 후인 2024년까지 한양대에 발전기금은 물론,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도 기탁했다. 그동안 몇 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했는지 세어보지 않아 모른다는 황재철 동문. 여러 역경을 견디면서도 일과 학업, 꿈을 놓지 않은 그는 젊은 세대에게 어떠한 상황에서도 용기와 희망을 잃지 말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