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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10일, 창단 기념 제1회 정기 연주회를 앞둔 경기리베라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맹연습에 돌입했다.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3시간씩 공연 연습을 진행 중이다. 정해진 시간보다 2시간이나 일찍 나와 홀로 연습에 매진하는 단원들도 있다. 음악을 향한 열정만큼, 단원들은 조금 특별한 면면을 지녔다. 경기리베라오케스트라는 연주자를 꿈꾸는, 19세 이상의 경기 도내 등록 장애인 40명으로 구성돼 있다. 장애예술인의 자립과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전하기 위해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만들어진 인재 양성형 장애인 오케스트라로, 지난해 12월 3일 ‘세계 장애인의 날’에 창단됐다.
“리베라(Libera)는 라틴어로 자유를 뜻합니다. 경기도민들을 대상으로 공모전을 실시해 정해졌죠. 그 이름처럼 음악을 통해 모든 경계를 허물고 감동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장애인 음악가들이 음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함께 나아가려 합니다.”
경기리베라오케스트라의 초대 지휘자로 발탁된 박성호 동문이 지휘봉을 들게 된 소감을 밝혔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줄 오케스트라를 육성하기 위해 경기리베라오케스트라는 지난해 2차에 걸친 오디션을 통해 단원을 선발했다. 선발된 단원들은 2년간 매주 전문 강사에게 지도를 받는다. 경기도 예술단 및 다양한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무대 경험을 쌓고 예술인으로 성장할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행여 이제 막 창단된 신설 오케스트라라고, 혹은 장애인 오케스트라라고 이들의 실력을 낮춰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카네기홀 연주자, 평창 동계 패럴림픽 개막식 연주자 등 쟁쟁한 실력파들이 대거 모여 있기 때문이다. 박성호 동문 또한 오리엔테이션 자리에서 처음 합을 맞춰본 후 깜짝 놀랐다고 한다.
“단원들 모두 음악과 연주에 애정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실력이 좋은 편입니다. 전 이들이 장애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똑같이 지휘할 생각입니다. 장애인 오케스트라라고 이만하면 잘했다 만족하면 학예회 수준이 되는 겁니다. 장애인이라고 다른 악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비장애인보다 몇 배로 더 많이 연습하면 됩니다.”
사실 장애인 오케스트라는 합주의 완성도뿐 아니라 단원들의 장애 정도와 성향을 세심하게 살피며 음악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게 이끌어야 한다. 이 때문에 장애인 오케스트라의 지휘는 비장애인 오케스트라 지휘와 같지 않다. 박성호 동문은 이 점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이다. 11년 전 국내 최초의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 지휘자로서 7년간 활동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단원들과의 첫 만남을 앞두고 잠을 이루지 못하다, 기어이 11년 전 접어두었던 노트를 펼쳤다. 거기에는 단원 한 명 한 명에 대한 기록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사실 처음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았을 때는 장애인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단원들을 한 명씩 관찰한 후 성향을 자세하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때로는 혹독한 스승이 되어야 하고, 때로는 유치원 선생님처럼 자상하게 대해야 합니다. 이렇게 개개인의 성향을 고려하면서도 음악적 완성도를 높여야 하는 점이 가장 큰 어려움이죠.”
의사 표현을 정확하게 하기 어려운 발달장애인 단원은 연습 도중 갑자기 돌발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엄하게 주의를 주면, 옆에 있던 다른 발달장애인 단원이 놀라 불안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경기리베라오케스트라에는 발달장애인뿐 아니라 한 명의 청각장애인과 두 명의 시각장애인도 있다. 청각장애인 단원과 소통할 때는 입 모양을 잘 읽을 수 있도록 입을 크게 벌려 말하고, 시각장애인 단원들은 악보를 외워서 연주하기 때문에 사전에 합주할 곡을 녹음해 들려줘야 한다. 이러한 어려움을 잊지 않았음에도, 박성호 동문은 다시금 장애인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나섰다.
“합주를 마쳤을 때 희열을 느끼게 되는데 장애인 음악가들과 느끼는 희열은 더욱 큽니다. 그러한 감동이 관객에게 전해져 박수갈채를 받을 때면 가슴이 북받쳐 오죠. 장애인 오케스트라는 그 존재만으로도 위대합니다. 신발 끈을 묶는 데도 몇 년이 걸리는데, 악기를 배우고 서로 호흡을 맞춰 하나의 하모니를 만들어 간다는 것, 그 자체가 진정한 예술이 아닐까요?”
현재 박성호 동문은 경기리베라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일 뿐 아니라 강남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23년째 트롬본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성신여대에서 겸임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한양대학교 관현악과 재학 시절, 학내에서 연주하며 무대 경험을 쌓고 연주자의 태도를 배웠다는 박성호 동문은 그러한 경험들이 연주자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지금 제가 하는 모든 일에는 한양에서 쌓은 지식과 경험이 깊이 녹아 있어요. 그 덕분에 음악인의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존재이지만, 지금 있는 자리에서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기회는 옵니다. 예전에는 이런 말이 전혀 와닿지 않았는데 이제야 그 의미를 조금씩 알 것 같아요. 언젠가 후배님들도 한양의 후배들에게 같은 말을 해주고 있을 겁니다. 묵묵히 나아가다 보면 반드시 여러분의 시간이 올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후회 없는 시간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박성호 동문 또한 이제 막 하모니를 이루기 시작한 경기리베라오케스트라가 아름다운 감동을 선사할 수 있도록 후회 없을 뜨거운 열정을 쏟고 있다. 경기리베라오케스트라는 장애인 연주자들의 음악적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기 힘든 중요한 시도다. 그렇기에 박성호 동문은 장애인이라는 핸디캡 없이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오케스트라로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많은 분이 제가 특별한 사명감이나 계기가 있어서 이 일을 시작했으리라 생각하는데 사실 저는 특별한 사람도, 대단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저 단원들이 성장하고 무대에서 자부심을 느끼며 연주할 때 보람을 느낍니다. 그들의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그 여정에 동참할 수 있어 무한한 영광입니다.”
올봄, 박성호 동문이 지휘하는 경기리베라오케스트라가 전하는 감동의 선율에 흠뻑 빠져보면 어떨까. 악기가 어우러지는 소리 사이로 마음의 하모니가 느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