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WINTER

VOL. 260

Contents VOL. 260

COVER STORY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며 사회적 거리두기, 비대면 활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유롭지 못한 상황 속에서,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는 3차원 가상세계 ‘메타버스’가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2022년에 더욱 주목하게 될메타버스에 대해 알아봅니다.

#Zest 1

치매환자 돌봄 인솔
인간을 향한 기술의 좋은 예

실버로드 유리예 대표(전기전자컴퓨터학과 석사 20)

  • 글 박영임
  • 사진 손초원
흔히 좋은 신발은 좋은 길로 안내해준다고 말한다. 치매환자를 좋은 길로 안내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사명을 ‘실버로드’라고 지었다는 유리예 대표가 ‘휴로드’라는 치매환자 돌봄 인솔을 개발했다. 보기에는 보통 인솔처럼 보이지만 작은 센서에 GPS, 에너지 하베스팅, 딥러닝 등이 적용돼 치매환자의 배회나 낙상으로 인한 문제를 덜어준다.

치매환자 가족 고충 덜어주는 기특한 인솔

머릿속 기억은 희미해지건만 목적지도 없는 곳을 향해 걷기를 멈추지 않는 치매환자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에서 치매환자를 묘사할 때면 막무가내로 집에 가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거나 어딘지 모를 거리에서 길을 잃어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그려지곤 한다. 현실에서 그러한 일이 벌어진다면 보호자들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을 것이다. 이런 고충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 세 명의 공학도가 뭉쳤다.

“1년간 사회복지센터나 온라인 카페, SNS 등에서 치매환자 보호자와 요양기관 종사자 150여 명을 인터뷰했습니다. 그 결과 보호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배회, 낙상, 배변 문제인 것으로 조사됐죠. 우선 배회와 낙상 사고를 예방하는 데 초점을 맞춰 센서를 탑재한 인솔(깔창)을 개발했습니다.”

지난 2020년 8월, 대학원 연구실에서 만난 전기전자컴퓨터학과 동기 둘과 실버로드를 창업한 유리예 대표가 치매환자 돌봄 인솔인 ‘휴로드’의 개발 동기를 설명했다. 하지만 이미 시장에는 그와 유사한 치매환자를 위한 배회감지기가 출시돼 있다. 뭐가 다른 걸까.

“기존의 배회감지기는 오차범위가 크고, 금방 방전이 되며, 무엇보다 치매환자들이 착용을 거부해 이용률은 1% 이하에 그칩니다. 낙상 감지기도 있는데 설치된 곳에서만 감지 되고 미세한 움직임에도 경보가 울린다는 단점이 있죠.”

이에 비해 휴로드는 신발 속 인솔에 센서를 탑재해 환자도 모르게 작동한다. 그리고 이 작은 센서는 많은 기능을 수행한다. GPS를 이용해 스마트폰 앱을 깔면 치매환자의 실시간 위치를 확인해주고, 생활반경을 안심 구역으로 설정하면 배회 여부도 알려준다. 그뿐 아니라 가속도 센서로 낙상을 감지하고 사고 위치를 알려 보호자들이 신속히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다.

놀라운 건 또 있다. 에너지 하베스팅(버려지는 에너지를 재활용하는 기술)을 적용해, 걸어 다니는 동안 운동 에너지로 자가충전되기 때문에 배터리 충전의 번거로움도 해소했다. 딥러닝을 이용해 보행 데이터를 분석하면 환자의 상태도 판단할 수 있다.

유리예 대표는 ‘실버로드’를 창업하고 치매환자 돌봄 인솔 ‘휴로드’를 개발했다.
‘휴로드’에는 GPS, 에너지 하베스팅, 딥러닝 등이 적용돼 치매환자의 배회나 낙상으로 인한 문제를 덜어준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솔루션 개발

실버로드는 휴로드로 지난 6월 열린 ‘2021 산업융합 아이디어 사업화 해커톤’에서 최우수상인 산업통상자원부장관상을 수상했다. 한양대학교와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공동 주관하는 산업융합 아이디어 사업화 해커톤 대회는 일반인의 아이디어를 비즈니스 모델로 구현할 수 있도록 기술, 경영, 법적 자문을 지원해주는 개방형 혁신 플랫폼이다.

“산업융합 아이디어 사업화 해커톤에서 수상한 덕분에 비즈니스 모델 개발 및 소비자 평가 등의 지원을 받아 수월하게 시제품을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학부 시절부터 창업에 관심이 많았다는 유리예 대표는 마음이 맞는 동기들과 한양대 창업지원단의 예비창업패키지 아이코어 및 실험실창업탐색팀을 수료하며 엔지니어로서 보유한 기술력을 ‘치매환자 케어 솔루션’ 개발에 쏟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앞서 말한 치매환자 보호자 인터뷰뿐 아니라, 치매 인식 개선을 위한 웹툰 그리기나 수기 공모, 요양기관 봉사활동 등에 꾸준히 참여하며 실제 현장에서 사용할 이용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급속한 노령화로 치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 치매를 고민하기에는 이른 나이로 보이는 유리예 대표.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실은 친할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돌아가시기 3년 전부터 치매 증세를 보이셨어요. 여러모로 힘든 점이 많았지만, 무엇보다 부모님이 모두 일을 하셔서 집에 계신 할머니에 대한 걱정이 컸죠. 같은 문제로 걱정이 많은 분들의 고민을 덜어드리고 싶었습니다.”

알고 보니 유리예 대표 또한 치매환자의 가족이었다. 치매는 환자와 가족이 함께 고통을 겪는 병이다. 그 고충을 잘 알기에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치매환자 케어 솔루션을 개발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마침 창업 멤버 중 한 명인 임준형(전기전자컴퓨터학과 석사 20) 연구원의 어머니가 사회복지사로 일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실버로드는 휴로드로 지난 6월 열린 ‘2021 산업융합 아이디어 사업화 해커톤’에서 최우수상인 산업통상자원부장관상을 수상했다.

ICT 기반 차세대 돌봄 서비스의 모범

처음에 휴로드는 스마트신발 타입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현장의 의견을 수용해 제조 단가를 낮추고 다양한 신발에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인솔로 방향을 틀었다.

“요양원에서 베타 테스트를 실시했는데, 낙상 및 배터리 문제를 해결한 점에 좋은 점수를 주셨어요. 착용감만 좋다면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하더군요. 에너지 하베스팅의 경우 따로 모듈이 추가되기 때문에 인솔의 높이가 조금 높은 편입니다. 그래서 착용감을 개선하기 위해 인솔 제조업체와 계속 방법을 찾는 중입니다.”

어떻게 보면 휴로드는 치매환자 보호자들이 참여해 함께 만드는 것이다. 보호자들을 찾아다니며 고충을 청해 듣기를 마다하지 않는 유리예 대표는 사전조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적극적인 태도에 보호자들도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하지만 처음에는 보호자들에게 무례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실은 제가 워낙 소심한 성격이라 처음에 만나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사전에 원고를 작성해 연습하기도 했어요. 근데 오히려 보호자분들이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 가져줘 고맙다며 응원해주더라고요. 가끔은 저를 붙잡고 한참 괴로운 심경을 털어놓기도 하십니다.”

그럴 때마다 좋은 제품을 만들어 보호자들의 고충을 덜어 드려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는 유리예 대표. 현재 휴로드의 시제품은 개발을 완료한 상태이며, 내년에 있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복지용구몰 입찰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면 2~3만 원대(자기부담금)로 이용이 가능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자를 대상으로 배회감지기를 대여하거나 판매하는 배회감지기 보급사업을 실시 중인데, 여기에도 지원할 예정이다. 추후 공공·민간 데이터를 활용해 사고 발생 시 인근 관공서 및 의료기관, 지자체 관제센터와 연계시키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휴로드는 치매환자뿐 아니라 혼자 생활하는 어르신이나 인지장애가 있는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현재 치매환자의 배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디바이스도 개발 중입니다.”

치매환자 돌봄을 위한 솔루션에서 시작해 사각지대의 독거노인, 장애인, 유소년의 돌봄 공백까지 해결하고 싶다는 유리예 대표. 그는 ICT를 복지서비스에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좋은 선례를 보여주고 있다.